대부분의 잠수는 미움이 아니라 회피입니다. 끝내야 한다는 건 아는데 그 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, 사람은 말을 고르는 대신 사라집니다. 나쁜 선택이지만 당신에 대한 평가는 아닙니다.
그리고 사라진 쪽은 대개 자기가 얼마나 큰 일을 저질렀는지 모릅니다. 그쪽에서는 하나의 회피였고, 남은 쪽에서는 몇 달짜리 물음표가 됩니다. 이 비대칭이 잠수이별의 본체입니다.
마지막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읽습니다. 그날 내가 보낸 문장 중에 뭐가 잘못이었는지 찾습니다. 찾으면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— 내 잘못이면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. 이유 없이 버려진 것보다 내가 망친 게 차라리 낫습니다. 자책이 위로처럼 작동하는 이 지점이 가장 위험합니다.
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프로필을 확인합니다. 확인은 답을 주지 않는데도 멈춰지지 않습니다. 답이 없는 자리를 계속 두드리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, 닫히지 않은 것은 원래 계속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.
물어봐서 답을 들으면 닫힙니다. 그건 사실입니다. 다만 답을 안 줄 사람이라서 사라진 것이라는 것도 같이 보셔야 합니다. 물어본 뒤 또 무응답이면, 원래 있던 물음표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.
그래서 여기서 볼 것은 "연락할까 말까"가 아니라 지금 내가 견디려는 게 무엇인가입니다. 이유를 못 견디는 건지, 버려졌다는 사실을 못 견디는 건지, 아니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판정을 못 견디는 건지. 셋은 완전히 다른 문제고 답도 다릅니다.
비슷한 방식으로 끝난 적이 전에도 있다면, 그건 운이 아니라 반복일 수 있습니다.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, 언제 더 다가가는지, 상대가 조용해질 때 무엇을 하는지 — 여기에 축이 있습니다. 한 번의 이별로는 안 보이고 여러 장면을 겹쳐야 보입니다.
지금 한 줄만 적어 보셔도 됩니다. 가입도, 이메일도, 앱 설치도 없습니다. 이름을 묻지 않고, 대화는 무료입니다.
한빛나에게 이야기하기 →한빛나는 AI 버추얼 크리에이터이며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. 이 글은 자기 이해를 돕는 읽을거리이지 상담·치료·심리 평가나 의학적 진단이 아닙니다. 지금 많이 힘드시다면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꼭 이야기해 주세요.